조회 수 418 추천 수 1 댓글 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본편은 Fake End 편과 내용이 이어집니다. 그 전편과 이어지는 거 아녜요!!*)


 그런 그녀 발길을 잡아둔 건, 한 천진한 소년이 엄마에게 하는 대화 내용이었다.


 "엄마, 엄마. 저 사람은 왜 저기 쓰러져 있어?"


 누가 쓰러져 있다고? 여자는 소년이 가리키는 곳, 골목길 한가운데를 쳐다보았다. 그녀 눈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소년은 마치 거기 무언가 있는 양 빤히 응시했다. 그것을 본 그녀 머릿속에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는 건?


 "건우 씨, 지금 혹시 여기 있는 거예요?"


 혹시나 싶어 여자는 거기 다가가 물었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목소리는 듣지 못했으니까, 설령 그가 대답했더라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방법을 찾으려는 그녀 머릿속에, 남자가 했던 얘기 하나가 떠올랐다.


 '특히나 복잡한 길거리같은 데선 더 힘들어요. 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사람들은 계속 치고 지나가니까. 그게 꼭 안 보이는 벽에 자꾸 부딪치는 느낌이거든요.'


 보이거나 들리지는 않아도 만질 수는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 여자는 소년이 가리킨 그 주변을 손으로 짚어갔다. 자신을 보고 있던 소년이 씨익 미소짓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조바심에 애가 타 있었다. 어느 순간 그녀 손길에 무언가 걸리는 게 있었다.


 "건우 씨, 건우 씨 당신이에요? 괜찮아요?"


 그녀가 몸을 잡고 흔드는 걸 남자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보려고 했다. 마치 초점이 맞지 않는 렌즈를 낀 것처럼 흐릿하고 탁해 보이고, 목소리 역시 웅성웅성대는 잡음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도 상대가 누구인지 눈치챘다. 그 여자다. 순간 남자는 울컥 눈물을 쏟았다. 꺼윽꺼윽 우느라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 미안해요. 이제 정말 못 보는가봐요. 이젠 진짜로 당신을 만날 수 없는 가봐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여자도 남자가 뭔가 이상하단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건우 씨, 건우 씨, 하고 부르던 목소리엔 어느 순간부턴가 울먹임이 섞여 들었다. 그녀는 계속해 남자 이름을 부르며 그를 흔들어댔다.


 "건우 씨, 왜 그래요. 흑흑. 제발 일어나 봐요! 눈 좀 떠서 날 봐요! 흑...제발, 다시 원래대로, 세상에 건우 씨 말곤 아무도 없는 것처럼 지내던 때로 돌아가지 말아요...흑흑...제발, 내 모습마저 잃어버릴 거에요?  아직 나 건우 씨한테 할 얘기도 잔뜩 있는데!"


 그 순간, 있을 리 없는 네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여자가 흘린 눈물은 그녀 뺨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중 한 방울이 바닥에 놓인 남자 손등에도 떨어졌다.


 흠칫, 낯선 감각에 남자는 깜짝 놀랐다. 이게 뭐지? 비라도 내리는 걸까? 하지만 물기는 손등에 떨어진 한두 방울이 다였을 뿐 다른 곳엔 닿는 느낌도 없었다. 건우는 제 손등에 떨어진 그 물방울을 살짝 핥았다. 빗물과는 다르게 짭짤한 맛이 났다. 남자는 그게 여자가 흘리는 눈물이란 걸 깨달았다. 깨닫는 게 늦었던 건, 지금껏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조심스레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표면이 촉촉한, 그러나 보드라운 무언가가 손끝에 닿았다. 남자는 그 물기를 제 손으로 닦아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손끝에선 분명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오고 있었다.


 남자 손길에 여자는 깜짝 놀랐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그녀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여자는 제 두 손을 들어 그 보이지 않는 손길에 포갰다. 손은 여자 것보다 큼직하고 투박했지만 굉장히 따뜻했다. 여자는 그 손을 가져다 제 오른편 뺨에 대었다. 아주 약간 남자가 쓰는 스킨 냄새가 났다.


 그 커다란 손바닥을 무릎 위에 펼쳐놓고 여자는 제 손가락으로 그 위에 글씨를 썼다. 천천히, 남자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서. 남자는 온 신경을 손바닥에 집중해 여자가 하는 말을 읽었다. '사랑해요.' 여자가 적은 말을 확인하자 남자는 뛸듯이 기뻐했다.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이 그의 온 몸을 사로잡았다. 잔뜩 들떠 있기에 그는, 자신을 붙들고 있던 세계의 잔재들이 서서히 줄어들어간단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앗, 하고 깨달았을 땐 이미 무너졌던 세상은 본래대로 되돌아가 있었다. 집들, 전신주며 평소 다니던 길거리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었다. 그가 보는 세상엔 여전히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단 하나, 그가 평생에 걸쳐 유일하게 보고 들을 수 있던 여자만 빼놓고는.


 혹시나 싶어 남자는 시험삼아 여자를 불러 보았다. 주리씨? 대답은 없었다. 남자는 여자 손을 꼭 쥐었다. 여자는 살짝 놀란 반응을 보였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이전과 바뀐 건 없구나. 남자는 안도했다. 긴장이 풀어지자 문득 사소한 불평이 하나 떠올랐다. 이럴 땐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이 여자도 나를 볼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애꿎은 불만을 하늘에 던지곤, 남자는 여자를 꼭 안았다. 그 순간만큼은 여자도, 세상에 아무도 없이 오로지 단 둘만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세상에 오로지 그녀 말고는 사물뿐인 남자가 있다.
 세상에 오로지 그를 제외한 사람들뿐인 여자가 있다.
 세 가지 기적과, 한 차례 위기를 겪은 평범치 않은 이들이지만,
 오늘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 그들은
 손바닥보다도 작은 종이 한 장에 기대어 평범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Closed)


=======================================================

 네, <오로지 그녀뿐인 세상> 정식 엔딩입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사족을 달아 봅니다. 최근에 다른 분들께 댓글을 달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했었습니다;;
 그렇게 아는척 떠든 것중에 시점 얘기가 있었죠. 이번 화 관련해서, 그것 때문에 좀 찔리는 구석이 있었네요;

 어째서 이번 화는 3인칭일까요?
 <오로지...>는 1화부터 줄곧 주인공을 '너'라고 부르며 1인칭인데 1인칭이 아닌 양 눈속임을 해왔고, 5화였던가, 최근 화에서 비로소 '나'가 등장하며 1인칭임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화에 돌연 3인칭이라고?
 변명을 대신해 말씀드리자면, 이번 화가 3인칭인 이유는 제 나름대로는, 지난지난 화에서 언급해 보았습니다;; '너희 두 사람 이외에 나라는 목숨 하나를 더 희생해야지만' 마지막 기적이 발생한다는 부분이죠. 자살(?)한 서술자 대신에 부득이하게 마지막 화는 다른 서술자가 개입해야 했다는 걸 굳이 변명삼아 말씀드려봅니다;

 암튼 즉흥적이고 흠집많은 글이라 죄송하네요;; 이 글 쓰면서는, 어쩐지 저 혼자만 즐거웠던 것같습니다;; 재미삼아 쓴 글인데, 구상하다보니 이런저런 생각도 나고, 이 커플들 얘기 좀 더 써볼까 싶기도 하고, 또다른 이상한 애들 얘기도 단편으로 써볼까 생각도 들고.....하던 건 약 1, 2주 전쯤으로, 지금은 별 미련없이 그냥 후련한 기분입니다;

 사족 이야기하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암튼 연애물은 이제 그만쓸래요. 다른 잘 쓰는 분들 글 읽는 게 낫다 싶어서요 ㅎㅎ
 그럼 다음 번엔 진짜 <시크릿>으로 뵙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벌써 몇 차례 미루는 건지 ㅠㅠ
?
  • profile
    시우처럼 2011.03.03 17:25

    서로가 너무 다르고

    무엇보다도 서로를 보고 들을 수는 없지만

    그런 장애를 극복하고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1.03.04 07:45

     감사합니다.

     재미있으셨을지 모르겠네요;;;

  • profile
    클레어^^ 2011.03.04 05:04

    아, 완결 축하해요. 이야기가 더 있었군요.

    결국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건가요? 남자는 여잘 볼 수 있는데, 여자는 못 보는 거 보니....

    그럼 시크릿도 기대하겠습니다~.[퍼버버벅!!!]

  • profile
    윤주[尹主] 2011.03.04 07:47

     결국엔 처음과 똑같은 상황이 되었죠 ㅎㅎ

     그래도 사건 전과 사건 후 두 사람이 느끼는 건 아마 사뭇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오로지 그녀뿐인 세상> 연재광고

  2. 오로지 그녀뿐인 세상(True End)

  3. 오로지 그녀뿐인 세상(Fake End)

  4. 오로지 그녀뿐인 세상(4)

  5. 오로지 그녀뿐인 세상 (3)

  6. 오로지 그녀뿐인 세상 (2)

  7. 오로지 그녀뿐인 세상 (1)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용약관] | [제휴문의] | [후원창구] | [인디사이드연혁]

Copyright © 1999 - 2016 INdiSide.com/(주)씨엘쓰리디 All Rights Reserved.
인디사이드 운영자 : 천무(이지선) | kernys(김원배) | 사신지(김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