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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은 Fake End 편과 내용이 이어집니다. 그 전편과 이어지는 거 아녜요!!*)


 그런 그녀 발길을 잡아둔 건, 한 천진한 소년이 엄마에게 하는 대화 내용이었다.


 "엄마, 엄마. 저 사람은 왜 저기 쓰러져 있어?"


 누가 쓰러져 있다고? 여자는 소년이 가리키는 곳, 골목길 한가운데를 쳐다보았다. 그녀 눈엔 아무도 보이지 않는데, 소년은 마치 거기 무언가 있는 양 빤히 응시했다. 그것을 본 그녀 머릿속에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다는 건?


 "건우 씨, 지금 혹시 여기 있는 거예요?"


 혹시나 싶어 여자는 거기 다가가 물었다.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목소리는 듣지 못했으니까, 설령 그가 대답했더라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방법을 찾으려는 그녀 머릿속에, 남자가 했던 얘기 하나가 떠올랐다.


 '특히나 복잡한 길거리같은 데선 더 힘들어요. 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사람들은 계속 치고 지나가니까. 그게 꼭 안 보이는 벽에 자꾸 부딪치는 느낌이거든요.'


 보이거나 들리지는 않아도 만질 수는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 여자는 소년이 가리킨 그 주변을 손으로 짚어갔다. 자신을 보고 있던 소년이 씨익 미소짓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조바심에 애가 타 있었다. 어느 순간 그녀 손길에 무언가 걸리는 게 있었다.


 "건우 씨, 건우 씨 당신이에요? 괜찮아요?"


 그녀가 몸을 잡고 흔드는 걸 남자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보려고 했다. 마치 초점이 맞지 않는 렌즈를 낀 것처럼 흐릿하고 탁해 보이고, 목소리 역시 웅성웅성대는 잡음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지만 남자도 상대가 누구인지 눈치챘다. 그 여자다. 순간 남자는 울컥 눈물을 쏟았다. 꺼윽꺼윽 우느라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꺼내지도 못했다. 미안해요. 이제 정말 못 보는가봐요. 이젠 진짜로 당신을 만날 수 없는 가봐요.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여자도 남자가 뭔가 이상하단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건우 씨, 건우 씨, 하고 부르던 목소리엔 어느 순간부턴가 울먹임이 섞여 들었다. 그녀는 계속해 남자 이름을 부르며 그를 흔들어댔다.


 "건우 씨, 왜 그래요. 흑흑. 제발 일어나 봐요! 눈 좀 떠서 날 봐요! 흑...제발, 다시 원래대로, 세상에 건우 씨 말곤 아무도 없는 것처럼 지내던 때로 돌아가지 말아요...흑흑...제발, 내 모습마저 잃어버릴 거에요?  아직 나 건우 씨한테 할 얘기도 잔뜩 있는데!"


 그 순간, 있을 리 없는 네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여자가 흘린 눈물은 그녀 뺨을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중 한 방울이 바닥에 놓인 남자 손등에도 떨어졌다.


 흠칫, 낯선 감각에 남자는 깜짝 놀랐다. 이게 뭐지? 비라도 내리는 걸까? 하지만 물기는 손등에 떨어진 한두 방울이 다였을 뿐 다른 곳엔 닿는 느낌도 없었다. 건우는 제 손등에 떨어진 그 물방울을 살짝 핥았다. 빗물과는 다르게 짭짤한 맛이 났다. 남자는 그게 여자가 흘리는 눈물이란 걸 깨달았다. 깨닫는 게 늦었던 건, 지금껏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조심스레 손을 허공으로 뻗었다. 표면이 촉촉한, 그러나 보드라운 무언가가 손끝에 닿았다. 남자는 그 물기를 제 손으로 닦아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손끝에선 분명 따스한 온기가 전해져오고 있었다.


 남자 손길에 여자는 깜짝 놀랐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그녀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여자는 제 두 손을 들어 그 보이지 않는 손길에 포갰다. 손은 여자 것보다 큼직하고 투박했지만 굉장히 따뜻했다. 여자는 그 손을 가져다 제 오른편 뺨에 대었다. 아주 약간 남자가 쓰는 스킨 냄새가 났다.


 그 커다란 손바닥을 무릎 위에 펼쳐놓고 여자는 제 손가락으로 그 위에 글씨를 썼다. 천천히, 남자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들여서. 남자는 온 신경을 손바닥에 집중해 여자가 하는 말을 읽었다. '사랑해요.' 여자가 적은 말을 확인하자 남자는 뛸듯이 기뻐했다. 말할 수 없는 충만감이 그의 온 몸을 사로잡았다. 잔뜩 들떠 있기에 그는, 자신을 붙들고 있던 세계의 잔재들이 서서히 줄어들어간단 것조차 깨닫지 못했다.


 앗, 하고 깨달았을 땐 이미 무너졌던 세상은 본래대로 되돌아가 있었다. 집들, 전신주며 평소 다니던 길거리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었다. 그가 보는 세상엔 여전히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단 하나, 그가 평생에 걸쳐 유일하게 보고 들을 수 있던 여자만 빼놓고는.


 혹시나 싶어 남자는 시험삼아 여자를 불러 보았다. 주리씨? 대답은 없었다. 남자는 여자 손을 꼭 쥐었다. 여자는 살짝 놀란 반응을 보였지만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이전과 바뀐 건 없구나. 남자는 안도했다. 긴장이 풀어지자 문득 사소한 불평이 하나 떠올랐다. 이럴 땐 기적이라도 일어나서, 이 여자도 나를 볼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애꿎은 불만을 하늘에 던지곤, 남자는 여자를 꼭 안았다. 그 순간만큼은 여자도, 세상에 아무도 없이 오로지 단 둘만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세상에 오로지 그녀 말고는 사물뿐인 남자가 있다.
 세상에 오로지 그를 제외한 사람들뿐인 여자가 있다.
 세 가지 기적과, 한 차례 위기를 겪은 평범치 않은 이들이지만,
 오늘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 그들은
 손바닥보다도 작은 종이 한 장에 기대어 평범하게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Clo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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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오로지 그녀뿐인 세상> 정식 엔딩입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사족을 달아 봅니다. 최근에 다른 분들께 댓글을 달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했었습니다;;
 그렇게 아는척 떠든 것중에 시점 얘기가 있었죠. 이번 화 관련해서, 그것 때문에 좀 찔리는 구석이 있었네요;

 어째서 이번 화는 3인칭일까요?
 <오로지...>는 1화부터 줄곧 주인공을 '너'라고 부르며 1인칭인데 1인칭이 아닌 양 눈속임을 해왔고, 5화였던가, 최근 화에서 비로소 '나'가 등장하며 1인칭임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화에 돌연 3인칭이라고?
 변명을 대신해 말씀드리자면, 이번 화가 3인칭인 이유는 제 나름대로는, 지난지난 화에서 언급해 보았습니다;; '너희 두 사람 이외에 나라는 목숨 하나를 더 희생해야지만' 마지막 기적이 발생한다는 부분이죠. 자살(?)한 서술자 대신에 부득이하게 마지막 화는 다른 서술자가 개입해야 했다는 걸 굳이 변명삼아 말씀드려봅니다;

 암튼 즉흥적이고 흠집많은 글이라 죄송하네요;; 이 글 쓰면서는, 어쩐지 저 혼자만 즐거웠던 것같습니다;; 재미삼아 쓴 글인데, 구상하다보니 이런저런 생각도 나고, 이 커플들 얘기 좀 더 써볼까 싶기도 하고, 또다른 이상한 애들 얘기도 단편으로 써볼까 생각도 들고.....하던 건 약 1, 2주 전쯤으로, 지금은 별 미련없이 그냥 후련한 기분입니다;

 사족 이야기하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암튼 연애물은 이제 그만쓸래요. 다른 잘 쓰는 분들 글 읽는 게 낫다 싶어서요 ㅎㅎ
 그럼 다음 번엔 진짜 <시크릿>으로 뵙겠습니다; 생각해보면 벌써 몇 차례 미루는 건지 ㅠㅠ
?
  • profile
    시우처럼 2011.03.03 17:25

    서로가 너무 다르고

    무엇보다도 서로를 보고 들을 수는 없지만

    그런 장애를 극복하고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 profile
    윤주[尹主] 2011.03.04 07:45

     감사합니다.

     재미있으셨을지 모르겠네요;;;

  • profile
    클레어^^ 2011.03.04 05:04

    아, 완결 축하해요. 이야기가 더 있었군요.

    결국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건가요? 남자는 여잘 볼 수 있는데, 여자는 못 보는 거 보니....

    그럼 시크릿도 기대하겠습니다~.[퍼버버벅!!!]

  • profile
    윤주[尹主] 2011.03.04 07:47

     결국엔 처음과 똑같은 상황이 되었죠 ㅎㅎ

     그래도 사건 전과 사건 후 두 사람이 느끼는 건 아마 사뭇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마지막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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