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1.25 07:24

오로지 그녀뿐인 세상 (2)

조회 수 492 추천 수 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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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하디흔한 게 커피전문점이라지만, 여자가 자주 애용하는 가게라면 네게는 각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나 그 가게가 네 집에서 멀지 않다면 더더욱. 이게 우연일까?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네가 스스로에게 반문할 모습이 눈에 선하다. 두 번째 기적은 소소하긴 해도 너를 충분히 기쁘게 해준 듯하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여자를 앞에 두고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네가 무심코 낸 소음에 화들짝 놀라 읽고 있던 책에서 고개를 떼었다가, 한참 동안 주위를 두리번댄 후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 움직임이 참을 수 없이 귀엽다는 생각을 할까? 이따금씩 길게 자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는 여자 손가락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란 생각을 할까? 생전 처음 직접 본 여자가 네게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면 곤란하다. 어쨌거나 네가 그녀와 사랑에 빠지리라 생각해 두 번씩이나 소중한 기적을 행사한 거니까.


 어떻게든 그녀에게 네가 있단 걸 알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목소리를 내어서? 안타깝게도 그녀는 너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 탁자를 두들겨서? 그녀는 그 테이블에 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오해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는 영영 그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녀를 직접 만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건 탁자를 두들기는 것보다 더 심한 취급을 당할지도 모른다. 네가 보고 듣지 못하는 거지 커피숍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네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볼 수 있으니까.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빈 컵을 들고 카운터로 가서, 커피 리필을 시킨다. 자리엔 덮어둔 그녀 다이어리가 있고, 그녀가 읽던 책 한 권이 펼쳐진 채 놓여 있다. 책 위에 놓아둔 볼펜 한 자루를 너는 조심스레 집어 든다.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알린다는 건 좋은 발상이다. 어디에 적어줘야 그녀가 알아볼까? 그녀가 보던 책 위에? 여자는 화를 낼지도 모른다. 다이어리엔 어떨까? 네가 있단 걸 여자가 알아차리더라도 남 다이어리를 훔쳐봤단 의심을 사게 될 수도 있다. 테이블 위에? 여자가 눈치 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녀 눈을 사로잡으면서 여자에게 별 피해도 주지 않고 얼마든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종이가 필요하다. 네 손에 연습장이라도 들려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빈손으로 털레털레 집을 나온 네가 그런 걸 가지고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자리로 돌아온 여자는 네가 남긴 흔적을 발견한 눈치다. 커피 잔을 든 오른손 대신, 그녀는 왼손을 뻗어 책 위에 올려진 냅킨을 주어든다. 냅킨 위엔 네가 남긴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자로 또박또박 적은 건 아니지만 지저분한 글씨 없이 또렷하고, 또 그렇다고 무뚝뚝하거나 경박해 보이지 않고 조금 둥글둥글해 친근한 느낌을 주는 글씨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제가 보인다는데, 당신은 제가 보이지 않나 보네요.'


 여자가 놀라움을 표시하기 전, 그녀 눈앞에서 너는 다시 펜을 붙잡는다. 여자 눈으론, 흡사 펜이 혼자 저절로 붕 떠서 냅킨 위에 뭔가를 적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네가 여자에게 보내는 두 번째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다. '근데 전 당신 말고는 보이지 않아요. 제 평생에 걸쳐 단 한 명도.'


 이 정도면 여자도 호기심을 느낄 만할까? 이쯤에서 너는 과감하게 한 번 여자에게 대시해보려 할지도 모른다. '어때요? 제 얘기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잠깐 고민 후 여자는 자리에 앉는다. 그녀는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려다가, 조금 망설인 끝에 그만둔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 이야기를 한다는 게 분명 낯선 것이리라. 너 역시 그런 그녀 심정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이 이상한 체험에 있어선 네가 그녀보다 선배니까.


 그녀가 뭔가 망설이는 듯하다. 너는 눈치 챘는지, 손에 들고 있던 펜을 그녀 쪽으로 넘긴다. 그녀는 펜을 들고 다시 한참을 고민한다. 그녀가 테이블에 올려둔 커피가 식어간다. 그녀는 커피를 한 입 쭉 들이키고는 이윽고 냅킨 위에 무언가를 썼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같은 둥글둥글한 글씨체라도 여자가 쓴 쪽이 훨씬 귀엽게 느껴진다. 너는 여자를 안심시키려 든다. '저도 모르겠어요. 전 태어날 때부터 그랬거든요. 근데 그쪽은' 너는 이쯤에서 잠시 망설인다. 뭐라고 써야 할지 단어를 고르는 건가? '그쪽은 처음인가요? 이런 일이.'


 '처음이에요.' 당연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녀는 아직 펜을 네게 넘기지 않았다. '이제껏 단 한 번도 그쪽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요.' 처음에 '본 적이'라고 썼던 걸 두 줄을 그어 지우곤 그 뒤에 '만난 것이'라고 새로 썼다. 아무래도 여자는 이 이상한 체험에 대해 여전히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듯하다.


 너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도 같다. 손 글씨로만 대화를 하는 건 아무래도 분위기가 딱딱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 저랑 마찬가지네요.' 한 줄을 쓰고 너는 줄을 바꿔 그 아래 새로운 문장을 적는다. '저도 절 보지 못하는 사람을 만난 게 처음인데^^'


 여자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다소 경계심이 누그러진 모양이다. 친숙한 글씨체, 낯익은 이모티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너와 대화하는 데 익숙해지기까진 제법 시간이 걸릴 테지만,



 어쨌거나 분명히 성과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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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 설문조사는 정답은... 글쎄요, 저도 <유브갓메일> 쪽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좀 상황이 많이 다르긴 합니다만;; 실은 설문조사 양식 작성할 때는 '<러브레터>랑 비슷하지 않아?'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영 아닌 것 같아서요;

 암튼 이번 화 얘기를 해볼까요?
 이번 화는 본래 두 화로 나누어 올리려고 한 분량을 합쳐 올립니다. 두 화로 나누면 너무 양이 적을 듯하더군요;;

 암튼 그래서 본래 진행하려던 설문조사 하나가 생략되어버렸지만....암튼 오늘도 설문조사 타임입니다^^ 이번엔 따로 설문조사 양식 만들지 않고 리플로만 진행하려고 해요.

 (설문) 두 남녀 등장인물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있다면? (예 : 이름, 가족, 과거의 일 등등)

 이번 설문 답은 다음 화 인물들의 대사로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리플이 전혀 없어도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쓸 얘기가 있으니까요 ㅎㅎ 단, 어디까지나 남녀 두 등장인물에 대해서만입니다. 다른 캐릭터는, 설령 제가 등장시켰더라도 일단은 제외할게요.

 아무쪼록 좋은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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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클레어^^ 2011.01.25 08:01

    흐음... 전 다 궁금해요.

    그래도 제일 궁금한 건... 주인공들의 이름?

  • profile
    윤주[尹主] 2011.01.26 03:22

     이름은 다음 화에 꼭 나올 거에요 ㅎㅎ 기대한 질문은 이름 말고 다른 거긴 한데;;

  • ?
    다시 2011.01.26 01:22

    저는 이름짓기 진짜 힘ㄷ들던데

  • profile
    윤주[尹主] 2011.01.26 03:24

     저는 대충 짓습니다;; 가급적 지난 번에 짓던 이름과는 다르게 하려고 해보고, 분위기 대충 맞춰보려고 해보고 하는 정도지요;; 다른 분들 얘기 들어보면, 주변 친구 이름을 그대로, 혹은 살짝 바꿔서도 많이 쓰신다더군요 ㅎ

  • ?
    타이머 2011.01.26 09:09

    '관계' 는 둘 이상의 객체가 필요하지요. 부모와 자식, 이 관계가 가장 궁금하군요. 사람을 인지하지 못하는 자식을 가진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부모가 안아줄 때마다 공중에 떠 있는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주인공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 profile
    윤주[尹主] 2011.01.26 21:28

     심정 표현까진 좀 어렵겠지만....주인공 시점에서 본 가족 얘기도 나와야겠죠 ㅎㅎ 다음 화에 꼭 넣을게요.

  • profile
    시우처럼 2011.01.27 03:36

    저는 여자가 세상의 혼자고 그 혼자뿐인 세상에 남자가 등장한 걸로 알았는데

    제가 독해를 잘못했었던 거군요. ㅎ;

    그런데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모습 뿐만이 아니라 소리, 체취같은 그런 것들도 느끼지 못하는 거죠?

  • profile
    시우처럼 2011.01.27 03:39

    아, 작품 소개를 보고 오니 알겠네요

    남자는 여자밖에 못보고

    여자는 남자만 보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었군요.

     

    그런데 애초에 남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본다는 걸 어떻게 알죠? 다른 사람이 보이질 않는데...

    이번 대화 처럼 수담으로 존재를 확인하고 확인해주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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