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04 08:00

어느 겨울의 초상

조회 수 416 추천 수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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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실제 인물, 사건, 단체, 종교, 사상, 아무튼 기타등등 어떤 것과도 관계없는 완전한 허구입니다.



#1

 

 겨울의 학교 도서관은 언제나 추웠다. 등록금은 내려가지도 않는 주제에, 돈으로 하는지는 몰라도 난방은 틀지도 않아서 심할 때는 바깥이랑 온도가 거의 비슷할 때까지 있었다. 집이 추워서 왔더니 도서관이 추울 줄이야. 덤으로 화장실 방향제 냄새가 건물 전체에서 풍겼다. 나는 덜덜 떨면서 손을 비빈 다음, 다시 펜을 잡았다. 기껏 비벼서 데워놓은 손이 무색하게 만년필은 얼어 죽은 시체 같았고, 평소에 험하게 다룬 데에 대한 보복으로 손에 시꺼먼 얼룩을 잔뜩 묻혀줬다.

 

 노트의 이야기는 그래서 그는 그들을...에서 전혀 나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흔히 말하는 변비가 찾아왔다고 하면 정확할 거다. 물론 항상 이런 상태인 보면 나는 단순히 변비가 아니라 애초에 재능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한참을 종이만 노려보고, 노려보고, 노려보다가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바깥 공기라도 쐬고 오는 나을 같아서였다. 관절에서 수수깡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자리에서 누가 트림이라도 했는지 시큼한 악취가 공기 중에 떠돌아, 그나마 없었던 식욕까지 방에 날려버렸다.

 

 계단을 올라가며 대체 나는 뭐가 문제인지 생각해 봤다. 관심 없는 학과에 성적 되는 대로 들어와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친해지려고 노력도 적도 없고. 그런 주제에 조금만 공부하면 좋은 학교에 있었을 거라고-그래, 나도 초등학교 다닐 때는 내가 S대라도 들어갈 알았어- 자기 합리화나 하고 앉아있고. 1학년 2학년 팽팽 놀다가 군대 갔었던 친구들 전역할 즈음에 입대하고. 그리고 이제 전역한 다음에는 아무도 모르는 투명인간처럼 살고 있고. 군대 있는 동안에 뭔가 했냐고? 그러면 내가 이렇게 살고 있겠냐? 하여간 모든 문제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인생은 잘못된 선택과 어제 똥을 치우는 것의 연속이었다. 친구 따라 쓸데없이 수학도 물리도 하면서 이과로 따라가거나, 성적도 되면서 친구들 논다고 나도 온라인 게임이나 덜컥 시작해서 100만원 가까이 쏟아 붓거나-제일 원통한 계정을 사려는 놈도 없을 뿐더러, 계정을 팔아봤자 부은 돈의 반도 건지지 못하리란 것이었다- . 이것저것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다가 발을 잠시 헛디뎌서 넘어질 뻔했고, 계단을 내려가던 여자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예뻤지만 취향은 아니었다. 설사 취향이더라도 여자 눈에 지저분하고 만날 똑같은 옷이나 입고 다니는 아저씨로나 보일 뻔했지만. 60개의 계단을 올라 도서관 문을 나서자, 하늘이 오후 3시의 태양 아래서 하얗게 빛났다. 공기가 차가웠다.

 

 언덕 투성이의 학교라 바퀴 돌고 왔더니 겨드랑이와 등이 축축했다. 역시 이번에도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래도 몸이 데워졌을 때는 괜찮았지만, 앉자마자 넓은 등짝과 도서관 안의 공기가 만나며 빨리도 식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얼어 죽겠다 싶어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떠왔다. 돈이 있었다면 아메리카노라도 마셨을 테지만, 이번 생활비가 바닥이 나려는 참이니 그럴 수는 없었다. 다시 60개의 계단을 내려와, 자리에 앉고 펜을 잡았다. 조금이라도 보려고 끼적거리고 있자니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그게 말야..."

 

 "정말 싫지 않아?"

 

 여기 이거 있잖아. 미분하면 이게 분수로 바뀌는…”

 

 도서관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면 자기들끼리 속삭이면 나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배려와 성의를 보였으니, 다른 사람들도 자기네들을 이쁘게 봐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개뿔이. 마침 마주보고 있길래 째려봤지만, 눈을 마주쳤는데도 잠시 어이없다는 것처럼 웃을 계속 떠들고 앉아 있었다. 내가 글을 쓰는 저런 놈들 때문이다. 언제나 뭔가 떠오르려고 하면 항상 옆에서 훼방을 놓으니까. 죽어버리면 좋을텐데. 묶어놓고 손톱을 하나하나씩 뽑아주면서 ' 몸이 금세기 최고의 명문을 남기고 있는데 앞으로 떠들 거야 떠들 거야?'라고 말하면 즉효겠지.

 

 물론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후로도 소득 없이 시간 되면 밥이나 먹고 똥이나 싸다가, 이용시간이 끝났으니 빨리 챙겨서 뜨라는 방송이 나올 때까지 잉크나 낭비하다가 도서관을 나왔다.  언덕을 내려가 골목골목 돌아가자 동네가 언제나 그렇듯이 먹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아저씨나, 전봇대와 진한 포옹을 나누고 있는 아가씨 등이 간간히 보였다. 내가 동네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운 저런 사람들한테 괜찮냐고 물어보거나 하는 절대 금물이라는 거였는데,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건들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걸어봐야 멱살이나 잡힐까.

 

  문을 열자 우선 반기는 아침에 내놓고 가는 깜빡한 쓰레기봉투였다. 그걸 헤집고 대충 옷을 벗고 누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밖에서 누군가 우렁찬 목소리로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며 악을 썼다. 그리고 뭔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 돼지 멱따는 소리 들리게 하라!"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을 자고 싶어도 매일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가쁜 신음소리, 흐르는 소리, 짖는 소리에 시달리며 나는 2시에나 겨우 잠들 있었다. 의식이 시꺼먼 수렁으로 가라앉을 즈음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이불을 덮었는데도 냉기는 전혀 가시질 않았다.

 

#2

 

 일어나 보니 이미 아침 수업은 멀리 물건너 뒤였다. 어제 핸드폰 잭을 제대로 꼽아두질 않아 빌어먹을 물건이 파업을 해버린 탓이었다. 상태도 꼬라지만큼이나-흔히 개판 오분 전이라고 표현하는- 정상이 아니었는데, 솜씨 나쁜 의사가 안에 솜뭉치라도 가득 쑤셔넣고 깜빡 잊어버린 다음 그대로 꿰매버리고서는 덤으로 콘크리트 신발이랑 장갑까지 선물해 같았다. 어차피 일어났더라도 학교에 갔을지도 미심쩍은 상태였다. 물론 이럴 부를 있는 친구 같은게 있을 리는 없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서 방범창 너머의 날씨는 온통 잿빛이었다. 시간은 열한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이런 날이면 사람이라도 불러서 도와달라고 하면 좋으련만, 그나마 학교 근처에 사는 친구들이랑은 사소한 문제로 싸운 서로 이야기도 안한 달은 되었다. 누군가는 아픈 김에 불러서 화해하면 좋지 않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는데, 싸운 다음에 내가 먼저 사과하는 있을 없는 일이었다. 집에 전화한다고? 차라리 친구와 사과를 하는 낫겠다.

 

 아무튼 병원이라도 가보는 차라리 나을 같아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병원에 가자 의사는 입이나 안쪽을 살펴본 다음, 독감이니 며칠 집에서 먹으며 쉬면 괜찮아 거라고 말했다. 요즘 감기 독하죠, 라는 말에 나는 , 하고 대답했다. 식당에서 대강 정도 밥을 먹을 있는 돈을 내고 약국에서 약을 찾아갔다. 역시 돌아갈 때도 걸어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기도 전에   쓰레기봉투 내놓는 깜빡했다는 깨닫고 욕을 내뱉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약을 먹어도 몸은 그리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한참을 꼼짝 없이 누워-몸이 아프면 이렇게 깨어 있지도, 잠들지도 않은 상태로 누워 있게 마련이다-있자니 온갖 잡상이 머릿속을 휘감고 돌았다.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당장이라도 문을 때려부수고 쳐들어가겠다는 세차게 두들겨대지는 않아도, 묘하게 신경을 긁는 방식이었다. 그래, 굳이 예를 들자면 '페니, 페니, 페니'정도가 것이다.

 

"학생! 학생!"

 

 집주인이었다. 생긴 조폭 두목같이 생긴 주제에, 콧소리를 있는 대로 넣어서 말하는 바람에 영락없이 3 성을 가진 사람처럼 들리는 작자였다. 물론 내가 죽었는지 걱정되서 보러 왔을 리는 절대 없었다. 그놈의 방세 이야기겠지. 애초에 내가 아픈 리도 없고 관심도 없을테고. 젠장, 그놈의 상금만 받으면. 그놈의 고료만 받으면 그런 얼마든지 줄텐데. 인터넷 신문은 2만원이 되지 않으면 고료를 지급하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었고.  한참을 가만히 있자 잠시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안에서 자는 하면 모를 알지? 학생! 학생!"

하며 집주인은 계속 문을 두드렸다. "방세 밀리는 것도 번이지! 계속 도망가 ! 경찰 부를 테니까!" 나는 귀를 틀이막고 죽은 듯이 웅크려 있었다. 끝에 쓰레기 냄새가 감돌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전화라도 하러 건지는 없었지만 이상 밖에서 두드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시간을 보니 어느덧 4시였다. 슬슬 밥을 먹으려고-아무리 방세 채근이 무서워도 굶을 수는 없으니까-밥솥을 열었더니 딱딱하게 굳은 놈이 반겨줬다. 어제 아침에 먹는둥 마는둥 나오면서 대충 뒀던 화근이었다. 나가기도 무섭고, 달리 먹을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딱딱한 덩어리를 집어 입에 넣었다. 씹는 내내 끝의 시큰함은 가실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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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윤주[尹主] 2012.06.05 07:31
    글쓰려고 생계를 포기하진 말라는 어느 작가 말이 생각나네요.
    잘 봤습니다~
  • profile
    3류작가 2012.06.05 11:57
    역시 분량이 많다!
    고로 재미지다!
  • ?
    乾天HaNeuL 2012.06.05 22:21
    의사가 어쩌고저쩌고 한 표현이 잼나네여. ㅇㅇ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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